단상 1
1. 상대를 연구하여 대응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봤지만
절명의 순간에는 준비된 것과 다르게 대처하고서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욕심이 이성의 눈을 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오래 기다렸기에 큰 틀은 벗어나지 않았어.
그 실수조차도 계산된 시나리오에 있었으니 자책은 빨리 딛고 move-on.
2. 조금만 걸어도 종아리 근육이 탄탄해져서 짜증났었는데
오늘은 내가 원하는 곳에 맘껏 걸어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느꼈다.
쨍한 사우디 뙤약볕을 한 시간을 걸으면서, 드디어 45년 만에 감사할 줄 아는 깨달음이 왔는가
3.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족같이 여긴 가까운 사람들이다.
인간에 대한 큰 기대가 없어서 단칼에 끊어버리기도 잘하고 내 그릇만큼 아낌없이 주고 나서 뒤돌아서 잊는 편인데..
끝내 잘라내지 못할 때 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는데 익혀야하는 걸까?
피가 안 섞인 실질적인 남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언제든 끊어내면 그만.
그렇게 울컥울컥 생각을 뻗어가다 혈육으로 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불신과 배신을 안고 얼마나 처절하게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곳에 다다르며 눈물바람이다.
어제 읽은 김하종 신부님의 글 때문이겠지. 안나의 집 후원을 시작했다.
4. 2월초쯤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일년에 한번 칠까 말까 하고 살아온 게 25년이라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두 시간씩 겨드랑이에 땀이 차게 쳐도 간단한 가요 한 곡도 어찌나 마스터가 안되던지 이제는 그냥 듣는 걸로 만족해야 하나 싶었다.
한달쯤 지나니 겨우 쇼팽에 손가락이 돌아가기 시작해서 그렇게 1악장은 넘기고 터키를 다녀왔는데
여행 꼬박 한달 동안 다시 굳었을 손가락에 쉽사리 건반 앞에 앉아지지가 않았다.
퇴행과 실패를 마주하는 건 사람을 움츠러들게 해서, 결국 긴 고난 후에 극복할 거란 걸 알게 된 지금이 더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건반 앞에 앉았는데..요행처럼 손이 기억했다.
이 나이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데 헛된 것이란 없구나
당연했던 것들에 위로를 받는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