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태어났으니까 열심히 살았다.
갖고 싶은 것 많고, 부러운 사람도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지만 더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나보다는 덜 치열하고 덜 좌절하기 바라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낳았다.
그래서 많이 낳지도 못했지.
그렇게 너무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놔서인지, 육아는 기쁘면서 너무 고되다.
나의 모든 것을 주며 키우고 있으면서, 그러면 안되는 것을 이성적으로 너무 잘 알아서 괴로운 것이다.
아마 전업주부로서 내 삶의 평가는 결국 남편과 아이의 사회적 성공으로 재단될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 과거 내 가치관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 대회 연속 양궁대회 일등을 한 린지가 내심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이틀동안은 세상이 다 내 편인 것 같았다.
그러다 어젯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낸 중국아이 얘기를 듣자 마자 세상은 다시 고단한 곳으로 변했다.
6살 첫피아노 대회부터 늘 일등 감이라고 했으나 번번히 더 잘하는 아이에게 밀리던 몇 년이 떠오르면서 잠시 슬프기도 했다.
언제나 이런 감정기복의 연속이다.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그들의 성공이 내 삶의 평가기준이 되어선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단도리를 해도 언제나 나는 또 그자리다.
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고..
한 편으론 성공해서 내 자식은 그런 힘든 경쟁의 수레바퀴에 넣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다져보기도 하고..
비트코인 유투브 강연을 찾아보고, 한번 대충 훑어보았던 주식책을 꼼꼼히 복습하고 있다.
공부하다 고개를 들면 늘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
'내가 아주 성공하고 풍족했으면 아이들을 보며 그저 행복할 수 있었을까?'
'미래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며 이렇게 성실하게 노력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그저 부속품으로,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돈은 무엇인가? 결국은 가족때문에 이렇게 절실히 원하는 것 아닐까..'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찌됐든 나는 IT 업계에 남아서 내 노후 준비는 잘하면서 풍족하게 쓰고 즐기며 살았겠지.
만약 세상이 급변하거나 내 한몸 건사할 수 없게 되면 그냥 죽으면 되지..라는 가벼운 마음이었을테고.
말레이시아에 간 미나 언니는 개학을 한지 일주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남편도 애들도 그렇게 수업에 빠져서 어쩌냐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인생이 워낙 운칠기삼 아닌가. 우리 아이들 좋은 대학 나와서 인정받아 고연봉 받을 때, 그 집 아이들 그 회사 CEO 랑 결혼하면 끝 아닌가.
(주위에 실제로 이런 경우 너무 많이 봐서.. 인생이 원래 불공평하다는 말을 도저히 건강한 마음으로 웃으며 넘길 수가 없다.)
그런 상실감, 무기력함을 애써 감추고 소시민의 삶을 성실히 살고자 하지만 자꾸만 드는 불만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확신이 없다. 기존의 소신들은 모두 사라지고 있다.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것인가.
이것이 원래 나의 본성인지, 인생이 원래 그런건지, 채민이 때문에 다잡은 마음이 다 흐트러진 건지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