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공포 영화를 보러 들어가고 나는 바로 옆 서점에서 오랜만에 지적 허영심을 채웠다.
반즈엔 노블즈가 싸게 파는 고전시리즈를 두 권 더 찾았는데, 당연히 독서보다 거실에 조로록 시리즈를 늘릴 생각이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읽기를 바래서 쟁였던 것이라 한번도 책을 펼쳐 본 적은 없다. 영어라서 엄두도 안 낸 것인데 한켠으로는 늙음이 지루해질 언젠가 몇 달이고 같은 자리에 앉아 다 정복할 상상도 하긴 했다.
영화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둘째를 자극할 요량으로 한권을 용감하게 펼쳤다.
모르는 단어들이 듬성듬성 나왔지만 우선 짧은 챕터를 통독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어도 문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로 며칠은 수학 강의만 들었다.
고등 과정에서 미분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다차 함수 그래프를 그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정말?...
수학을 좋아했고 꽤나 센스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단 한번도 그 본질을, 왜?를 되묻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 아침을 먹으며 길모어 걸스를 보다가 Paris 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고 예측이 되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수학처럼 투명하고, 괴팍하고, 그러나 파악하기 쉬운.. 약점도 강점도 다 보여주는 게 너였구나.
모르는 게 많아서 아직도 세상이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는 단어를 조합해놔도 뜻을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열심히 유형별 문제를 해결해도 왜?라는 큰 그림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인간의 앞 면만 보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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