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절반이나 넘어가서 가치관의 혼란이 오니 매 순간이 번뇌다.
而立 에 무엇이 문제였나
본래 뜻에 반하는 물질과 세속에의 욕심에 흔들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늦은 밤 어두운 허공을 보며 멀미가 인다.
억울함이 컸던 밤엔 뜻을 아예 바꾸어버리자 하고
부질없다 누그러진 밤엔 흔들리지 말아라 격려를 한다.
그 땐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의 30대는 타인에 많은 걸 바라고 그 잣대에 키를 맞추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그 공수표를 믿지 않을 수도 없었던 처지였고
도움이 절실했던 유학생 아내였던 어린 내가 있다.
젖을 물린 아이 너머로 바라보던 얼음에 막힌 유리창은 나의 의지를 마디마디 꺾어 놓았더랬다.
한바탕 원망을 게워내고 나서, 마흔이 되서 세상을 용서하는 방법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자책이었다.
그랬어야 했는데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를 하루종일 반복하며 내 탓이라고 몰아부쳤다.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것 같은 현재를 딛고 한번도 욕심내지 않았던 미래를 이루겠다고 하다보면 이번엔 조바심이 문제가 된다.
이런식으로는 知天命의 시간은 오지 않겠지.
나를 용서해야하는 거구나
어린아이처럼 감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하고.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을 잊은 결과는 잃어버린 일상의 가슴벅찬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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