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Fear

callisto97 2017. 10. 14. 00:57

병원에 관련된 건 이제 무섭다.

무심히 보던 의학드라마의 심폐소생술이라던가 헬리콥터는 이제 나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리고 채민이가 내게 남기고 간 것...

고심하고 내렸던 최선의 결정이 후에 최악의 결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동안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막연히 느끼고 살았는데

나의 결정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가져왔기에 내가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냥..가만히 있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어줍짢게 나서지 마...


우울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끊임 없이 드라마와 예능을 보면서 몸을 부지런히 혹사시키고 있다.

그러다 남에게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캐릭을 보거나, 단호하게 자신이 옳다가 주장하는 씬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 아니야..니가 틀렸을 수 있어. 그냥 내비둬... 더 나빠질 뿐이야. 지금 그 행동이 불행을 몰고 올지도 몰라..'


모두가 잔뜩 움츠려 있겠지.

아니라고. 네 탓이 아니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말해줘야 하는데.

내가 강하게 맘먹고 그러려고 했는데.

질문하듯이 내가 맞죠? 라며 부산스럽게 일을 벌렸는데, 무섭게도 30분만에 또 내가 틀렸다고 신이 말해주었다.


새벽 3시에 깨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큰 두려움은 분노가 되어 나를 집어 삼켰다.

술병을 뒤지다가 간신히 정신줄을 잡았다.

초컬릿을 약 먹듯이 급하게 먹어치우고 책을 읽으며 가만히 누워있었다.

당분이 서서히 뇌를 느슨하게 하자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살면서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결핍과 욕망과 절제들 사이에서 우유부한 내가 얼마나 피를 말리며 수많은 결정을 해야했던가.

그 순간들에 늘 최선을 다했기에 그 결과가 어떻든 이만하면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작은 성과들이 조금씩 쌓여, 나도 내 가족들도 점점 평온한 삶을 견고히 짜며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행복했다.

빨리 나이가 들어 더이상 수많은 방황과 아픔을 겪으며 혼란스런 결정들을 하지 않게 되었으면, 아니 더 현명하고 무던해지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어느 순간 나는 자만했던가보다.

내가 나서면 다 될 줄 알았다.

내 몫도 내어놓고, 서운함도 잊고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베풀면 될 줄 알았다.

인생은 그렇지가 않네.

이것이 누구의 팔자에 껴 있는 불행이었길래,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형태로 왔는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 때로.






채민아..이모가 너무 미안해.

보고 싶다..우리 조카...니가 나비가 되서 또 날아올까봐 이모는 어제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정원을 가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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