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시간을 뜨다

callisto97 2022. 4. 3. 21:09

이만큼 상처 받고 살다 보니, 이제 어떤 것은 영영 낫지 않고 흉이 질 것을 알 때가 있다.

지금은 덮었지만, 내가 나약하고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이 되었을 때 분명 그것을 끄집어낼 것이다.

머리가 너무 복잡한 어느 날은 드라마 한 시즌을 다 끝내고 명대사로 마음을 어루만져도

내 상처와는 별개인 것처럼 붉은 살이 그대로 드러나겠지.

그래서 행복한 순간에도 이제 되었다하는 마음 보다는 당장 다음주에 죽을만큼 힘든 시간이 올까봐 겁내겠지.

 

나이가 든다는 건 연륜이 쌓여 지혜로워지기 보단 겁이 나서 먼저 상처주고 그래서 점점 이기적이 되기 쉽다는 걸 알았다.

절대 그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삶이 불공평하고 좌절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그러나 나쁜쪽으로는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쁜 것은 편하다. 나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되고 주위를 둘러보느라 손해보고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자기합리화 한번이면 끝이다.

 

잠깐 꽃피는 일주일을 위해 일년 내내 물을 주고도 한번에 말라 죽어버리는 식물처럼

한마디 말과 사소한 행동으로 촘촘히 엮어 가는 시간들에 어느 올 하나가 어긋나버릴지 모르겠다.

그렇게 문양이 삐뚤어지는 것이 인생인데도 이렇게 기를 쓰고 똑바로 짜겠다고 악을 써서 고단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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